가만히 앉아 정신없이 오가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마음 한 켠이 참 묘한 일요일이다.
저녁 6시.
오랜만에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나러 가는 길이다. 곧 도착한다는 전동차를 기다리며 승강장 의자에 앉아 있는 것도 참 오랜만인 것 같다. 주말 내내 집에 있었던 바람에 이것저것 밀린 일을 하나둘씩 끝내다 보니 약속시간에 조금 늦어버렸지만 미안한 마음보다는 빨리 가서 밀린 이야기를 들을 생각에 벌써부터 몸이 간질간질하다.
그러고보니 친구의 임신 소식을 들은지 벌써 반 년이 넘었다. 부은 배와 함께 등장할 혜진이와 수진이의 모습이 이상하고 낯설 것만 같다. 고등학교 졸업, 그때의 우리 일은 마치 엊그제 같은데 말이다.
시트콤같은 우리의 신나고 유쾌했던 지난 날의 시간들은 몇몇 특정인물과 어우러져 그 곳에 단단히 자리하고 있다.
호랑이 같은 지구과학 담임선생님(선생님과 우리는 엄청난 추억이 있다)과 초이라 불리던 반장(지금 대체 뭐하는지 소식을 들을 수가 없다), 화장실도 안 가고 묵묵히 앉아 공부만 하는 전설의 도사(이름을 잊었다), 그리고 시도때도 없이 말썽만 부리던 문제의 우리들, 우리들
눈을 감지 않아도 선명히 떠오르는 건 학교의 푸른 잔디와 창 밖으로 시원하게 펼쳐지는 싱그러운 하늘과 다리를 타고 넘어가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모퉁이가 닳아 맨들맨들했던 몇 개의 정자와 평상들이다. 공부한답시고 주말에 등교해 뒷자리에서 컵라면과 삼각김밥을 나눠먹고 무언가 뱃속이 아쉬운 마음에 한걸음에 달려 내려가 빨간 떡볶이와 노란 튀김까지 섭렵한 다음 볼록나온 배를 움켜쥐고 포만감에 책상위에 널브러져 자던 우리들도 같이 떠오른다. 주말에 초원식당이 문을 열었다는 풍문이 들려오는 날이면 얼씨구나 하고 교문 밖을 나서 순대볶음을 졸이며 신나하던 우리들.
학교의 구석구석에서 나누었던 많고 많은 시시콜콜한 우리만의 이야기들. 윤주와 민아의 수학선생님 이야기, 다가올 축제 이야기, 저녁에 갈 동암역 노래방이야기, 한솥도시락 이야기 등등.
출근의 압박을 떨칠 수 없어 그런가. 잠이 오지 않는 일요일 새벽.
오늘도 그 때의 시간을 더듬어 그리며 지난 이야기를 추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