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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ttEr & SweeT

오이와 꼬마




다들 못 먹는 음식이 한 두가지 쯤은 있다. 나 같은 경우는 어릴 적 부터 향이 나는 음식은 죄다 싫어했다. 예를 들어 오이, 굴, 계피가루 같은 것. 오이는 비린내가 나서 싫었고 냄새만 맡으면 구역질 비슷한게 올라왔다. 오이 냄새에 격하게 반응하는 나 때문에 우리집은 오이반찬이 없을 정도였다. 초등학교 급식반찬으로 오이가 나올 때는 슬그머니 배식도 피했다. 편식하지 말고 꼭꼭 씹어 먹으라는 담임선생님의 말씀은 그 당시 내가 유일하게 반항할 수 있는 그런거였다. 남기지 말고 골고루 먹으라는 선생님은 날 괴롭히는 검은 악마로 보이곤 했다. 오이를 먹지 않으면서도 비린 냄새 때문에 입맛이 떨어져 밥을 깨작깨작하고 교실문을 나서기 일쑤였다. 키가 유달리 작아 땅콩이라 불였던 작은 나는 어릴적엔 이 핑계 저 핑계로 이리저리 가려내며 편식을 했다. 잘 먹지 않았던 탓에 어릴 적에 그리 작았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싫다며 쳐다보지도 못했던 오이인데 이제는 김밥 속에 들어간 오이 정도는 거뜬히 먹는다. 냉면이나 짜장면 위에 송송 채를 썰어올린 오이도 씩씩하게 먹어낸다. 그 정도는 부담없이 꼭꼭 씹어 삼키는 나를 보면 어린 내 모습이 생각나 뭔가 이상한 마음이다. 그럴 때가 있었지, 같은 거 그런 기억같은 것들이 문득.

시간이 지날 수록 이건 무조건 안 돼, 라는 것들이 줄어드는 것 같다. 절대 안 될 것 같았던 것들이 어느샌가 슬몃 가능해지고 두꺼워던 벽이 그새 얇아진다. 포크너의 곰처럼 어제와는 다른 소년이 그새 자라버린 아이가 내 귀밑머리에서 서성대고 있다.
그래도 중 피식 웃음이 새어나올 때는 아직도 가끔 김밥에 들어있는 오이를 빼먹는 나를 발견하면서다. 가끔은 먹지만 자주는 못 먹겠고 생오이는 아마 죽을 때 까지 못 먹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