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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독특한 기록_ 살인자의 기억법

 

 

 

'김영하 신작 읽었어?'
'아니, 아직. 살인자의 건강법이었던가? 아.. 살인자의 건강법은 노통브였나?'

 


교보문고에서 이메일이 왔었다. 김영하 신작을 구매하면 낭독회 초대권 추첨 기회가 있다나.
그냥 그려러니 하고 지나간 이메일.
몇 주 후 친구가 물어본 질문에 얼핏 스쳐지나며 본 듯한 이메일이 떠오르며, 아 살인자의 건강법! 이라한다.

 


마침 읽어가던 월든이 끝날참에 친구가 건네준 색이 고운 빨간색의 <살인자의 기억법>을 받고 바로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받아든 책을 들고 책이 참 가볍다 생각했다. 읽기 편하겠다,라며 빨간 표지를 넘겨 끝까지 파르르 넘긴다.
'이거 금방 읽어버리겠군'
날 보는 친구가 한 마디 덧붙인다.
'두 시간 짜리야.'

 


주말동안 다른 일을 섞어하며 여유있게 읽긴 했지만 꼬박 3일이 걸렸다. 책을 건네준 친구가 했던 말을 곱씹으며 읽었다. '작가가 한 문장 한 문장 정말 고뇌하며 썼다더라.'

 


작가의 고난을 인정해주려는 듯, 난 그의 책의 한 문장 한 문장을 열심히도 읽었다. 낭독회에 가지 못한 것을 한스러워하며.

 


요즘 보기드문 색다른 소설이다. 야금야금 진도가 잘 나가면서도 책장 앞을 다시 뒤적이며 읽게 되는, 희한한 매력을 가진 글이다. *마다 이어지는 김병수의 기록이 사라져가는 그의 호흡을 여실히 느끼게 도우며, 책의 앞뒤로 나오는 반야심경의 인용구가 왠지 김병수의 사라지고 있는 세계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므로 공 가운데에는 물질도 없고 느낌과 생각과 의지작용과 의식도 없으며, 눈과 귀와 코와 혀와 몸과 뜻도 없으며, 형체와 소리, 냄새와 맛과 감촉과 의식의 대상도 없으며, 눈의 경계도 없고 의식의 경계까지도 없으며, 무명도 없고 또한 무명이 다함도 없으며, 늙고 죽음이 없고 또한 늙고 죽음이 다함까지도 없으며, 괴로움과 괴로움의 원인과 괴로움의 없어짐과 괴로움을 없애는 길도 없으며, 지혜도 없고 얻음도 없으니라."

 


집에서 기르는 개의 존재는 중간중간 김병수의 입술과 머리에서, 은희의 입에서, 안형사의 입에서 튀어나오며 이건 뭔가 앞 뒤가 제대로 짜여있지 않다, 라는 혼란의 생각을 만든다.
함께 수록돼있는 권희철 문학평론가의 해설을 읽으며, 그제서야 아 그 뜻이 이런거였나, 하고 무릎을 치고 있다. 작가도 어느 정도는 이 해설이 맘에 들어 책에 함께 실었으려나.
"그 기록 속에서조차 세계는 자기 자신과 불일치하며 서서히 무너져 내리고 있다. 단지 자신이 길렀던 개를 알아보지 못했다는 것이 아니다. 개를 길렀다는 것인지 그렇지 않다는 것인지 끝내 확인할 수 없고, 김병수의 세계를 구성하는 작은 디테일 하나가 불확실해지면서 세계 전체가 조금씩 의심스러워지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내게 살인자의 이 독특한 기록은 앞으로도 두고두고 회자되지 않을까 싶다. 색다름이라는 것은 언제고 기록 안에 끼워져 있다가도 색이 고운 빨간색과 길을 돌아다니는 누렁이를 보면 불쑥 튀어 나올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