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ttEr & SweeT
아물다
lizyoo
2014. 3. 22. 13:05
나는 잘 붓는다. 손가락도 팔다리도 잘 붓는 편이다. 순환이 잘 안 되는 것일까.
오늘도 무섭게 날라오는 각종 업무 이메일과 맞써 싸우다 간만에 마사지나 받아야겠다는 생각에 7시 경에 컴퓨터 시스템종료를 눌렀다. 그리고 오늘은 정말 당당하게 말했다.
'부장님, 저 갈래요.''
'어, 빨리 가요. 나도 오늘은 가련다..'
아 우리 천사같은 부장님. 속으로 배시시 웃으며 까만 구두에 발을 슬그머니 집어 넣는데 아니나 다를까 발이 퉁퉁 부었다. 여자들은 다 공감할텐데 저녁만 되면 이런다. 한 사이즈 작은 신발을 억지로 구겨신은 듯한 느낌. 별다른 방법이 없으니 어쩔 수 없이 걸어야 하는데 아프다. 오늘도 이런 방법으로 아프다.
퇴근 길. 일주일만에 처음으로 책을 펼쳤다. 그간 인쇄된 활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읽을 수 있는거라곤 모니터 속 글자들. 업무용 프린트물 뿐. 그마저도 못하겠어서 화요일은 갑자기 조퇴를 했다. 그런데 읽힌다. 폭풍같았던 가슴이 잔잔해지며 평온을 찾았다. 이제는 읽힌다 책이 드디어.
포용가능한 범위가 넓어질 수록 내 앞에 보이는 세상이 점점 더 커져갈 수록 나는 조금 더 자랐구나, 라고 스스로를 다독이게 된다.
몸둘 바를 모르겠는 나의 난해한 성장은 이토록 거지같고 악몽같은 일주일을 견디며 치러졌다.
거지같다. 참, 사람일이란 이런건가.
좋았던 시절의 그땐 이 끝엔 무엇이 날 지켜보고 있을는지 했다. 그 끝은 부서지는 밝고 아름다운 햇빛 속일 줄로만 알았다. 그럴 줄 알았었다. 이 깊은 물길을 만나기 전까지, 깜깜했던 진실이 밝혀지기 전까지.
마사지를 끝내고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다시 구두를 신었다. 신기하게도 구두 속에 발이 쏙 들어간다. 그새 괜찮아졌구나. 꼬깃했던 마음도 그새 괜찮아졌구나. 그새 상처가 아물었구나, 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