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군의 바다는 언제나 새롭다_ 칼의 노래
가장 감명깊게 읽었던 책이 무엇이냐는 내 질문에, 김훈의 칼의 노래를 서슴없이 뱉어내던 친구의 말이 생각났다. 노트에 '칼의 노래'를 적어놓은지 벌써 1년이 지났고, 올해 12월 초 내 책장 안으로 들어온 이 책을 휴가의 둘째날에 무심히 꺼내들었다.
책을 읽으며 참 많이도 울었다.
지나간 것들의 흐름과 바다의 고요함과 시체의 비릿함이, 매일 시작되는 이순신 장군의 아침과 계속 되어야 할 발진이, 백성들의 울부짖음이 군사들의 몸부림이 머리에 그려지며 앞이 계속 흐려졌다. 소설이지만 단순한 소설로 읽히지 않았다. 인쇄된 문장 하나 하나가 이순신 장군의 입에서 나오는 말인 듯 했다. 그 분의 기강이 위엄이 책의 전체에서 느껴졌다.
'가자. 명량이다. 거기서 적을 맞겠다.'
명량해전이다. 적들이 오고 있었다. 적병의 칼에 백성의 허리가 베이고 군사들이 적탄에 맞아 쓰러진다. 사실의 나열, 지금으로써는 상상조차 되지 않는 장면이 담담하게 묘사되고 기술되어 한 문단을 이루고 모아진 말의 끝날이 가슴을 베어낸다. 20쪽 남짓 서술되어 있는 이 해전은 약 340쪽에 이르는 책의 전체를 우묵하게 우그릴 만큼 강한 영향력을 가진다. 솟아오르는 불화살과 장군의 명령이 뱃전에서 부딪히며 가슴을 울린다. 명량해전에서 난 참 많이도 울었다. 의금부 형틀에서의 장군의 모습이 겹쳐지며 정말 많이도 울었다.
'임진년의 기억은 멀고 흐리다. 지나간 전투의 기억은 손에 닿지 않았다. 바다는 전투의 흔적을 신속히 지웠다. 저녁에 사라진 빛들이 아침이면 수평선 안 쪽 바다를 가득 채우고 반짝였다. 지나간 것들의 흔적이 물 위에는 없었고 바다는 언제나 새로운 바다였다.'
작가의 담담한 문체에 감사하다. 그로인해 장군의 마음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었음을 의심하지 않는다.
마지막 발진이자 임진왜란의 끝을 알리는 노량해전의 전 날 밤, 때아닌 된장 배급 작업.
여름에 군사들을 시켜 담근 200독이 넘는 된장은 겨울을 넘겨야 익게 될 것이었다. 기약할 수 없는 다음 해 봄. 지리한 전쟁과 포개진 삶과 죽음과, 총통들이 너울거리는 이 붉은 글 속에서 유독 내 마음을 흔들어 울리는 것은 이런 대목이다.
'밤중에 수영 창고 마당에 횃불을 올리고 된장 배급 작업을 지휘하면서 내 종사관 김수철은 눈물을 흘렸다. 군관들도 울었고 백성들도 울었다.
나는 수영 창고 마당에 쭈그리고 앉아서 된장 독을 지고 가는 백성들의 뒷모습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함대는 동진했다. 섬과 섬 사이의 좁은 물목을 가득 메우고 달려가는 함대를 바라보며 연안의 백성들은 통곡했다. 백성등은 함대가 나아갈 때 울었고 돌아올 때 울었다. 백성들은 늘 울었다.'
물들일 염染자는 장군의 칼에 새겨져 장군의 왼쪽 가슴에서 소리친다.
장군의 바다는 언제나 새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