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보면 누군가가 바라는대로만, 원하는대로만 살아왔는지도 모르겠다.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삶의 가이드를 내 앞에 펼쳐놓았고 한 걸음 한 걸음 그 가이드에 따라 몸을 움직였다. 나름 내게도 굴곡진 시간이 있었지만 대체로 무난하고 평이한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자신을 뒤돌아보는 시간 같은거 가질 생각도, 필요도 느끼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그리고 이제와서야 돌아봄의 시간을 가지지 못한것에 대한 물음표와 아쉬움이 비로소 가슴을 헤집고 안타깝게 돌아다니기 시작하는거다.
퇴근 후 이어진 피정
일상을 잠시 벗어나 주변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는 이 시간들이 이토록 소중하게 여겨질 줄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노란 촛불이 동그랗게 원을 그리며 책상을 밝힌다. 왼팔을 접어 머리를 기대고 오른쪽 손으로 한없이 글자를 써내려간다.
지난 기억의 한 자락이 기쁨이 되고 행복이 되는 순간, 지난 기억의 한 자락이 분노가 되는 순간, 각자의 순간들이 기억의 이름으로 포용되며 그때 그 시절의 감정을 가지고 찾아온다.
격한 감정과 함께 올라오는 눈물은 기억을 씻어내고 상처를 덜어주고 통증을 지워내며 스스로를 위해준다.
스치듯 지나온 시간들을 되돌아 보며
나와 주변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며
기억의 조각들을 열심히 씻고 닦아내고, 원래 그들이 있었던 자리로 조심스럽게 가져다 놓는다.
예전보다 말끔해진 모습에 괜히 마음 한 귀퉁이가 선선해지며 차분해지는 느낌이다.
촛불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니 모든 것이 참 담담해진다.
노란 촛불은 여전히 흔들림없이 거기 그 자리에서 움직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