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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부탁해

lizyoo 2013. 5. 21. 22:10



지하철에서 한 글자 한 글자 읽어내려다가 그새 떨어지고 있는 눈물에 정신 차린다. 눈물만 나면 좀 날텐데 콧물도 같이 나니 지하철에서 너무 난감하다. 계속 책을 읽을 수가 없구나.
애써 마음을 진정시키고 다시 책을 펼쳐 읽기 시작하면 어느새 또 다른 문장이 날 찌른다. 코 끝이 마구 찡해오며 앞이 흐리멍텅해져 그냥 어어엉, 소리내며 울며 읽고 싶은데 여건이 따라주질 않는다. 요즘은 무서운 세상이라 어디선가 휴대폰을 꺼내들고 '지하철 울음보녀' 동영상을 찍을지 모르는 일이다.

책을 읽을때마다 밥을 짓는 어머니가,
혹시라도 내가 늦을 때면 거실에서 지쳐 잠드시며 날 기다려주시는 어머니가,
무서움이 많은 날 위해서 저녁까지 집이 비는 날이면 학교에서 늦게 돌아오는 날 위해 주방불을 항상 켜두고 외출하셨던 어머니가,
계절이 바뀌고 날씨가 변하면 침대보와 커튼을 짠하게 바꿔 놓으셨던 어머니가, 끊임없이 생각난다.

'딩동, 4층 입니다'
거의 반자동으로 집 번호키를 누르고 현관문에 신발을 던지듯 벗은 뒤 소리 없이 중문을 닫는다.

‘혜영이 왔니?’
거실에 계시는 어머니에게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한다. 몇 발자국만 걸어가면 어머니의 얼굴이 보일 텐데, 중문을 닫고 곧장 내 방으로 들어가면서 석연찮게 ‘응’이라고 말하고 만다. 퇴근 후 지칠 대로 지친 몸을 이끌고 방에 돌아왔더니 침대 한 귀퉁이에 켜켜이 쌓아 올린 내 옷가지들이 나를 가만히 쳐다보고 있다. 불현듯 죄송한 마음이 그리고 감사한 마음이 동시에 들이닥친다.
나중에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살림을 시작하게 되면 그제서야 엄마를 이해할 수 있을까. 내 작은 머리는 언제쯤 ‘엄마’라는 단어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항상 엄하셨던 어머니에게 어릴 적부터 수도 없이 혼났다. 그때마다 난 바락바락 대들었고 덕분에 머리에 한 개 생길 혹이 두,세개는 생기곤 했다. 어렸을 땐 괜히 서운한 감정에 엄마한테 더 많이 툴툴거리고 징징댔다. 한 해가 지나고 한 살씩 나이를 먹을때마다 나도 조금씩 철이 들며 엄마를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내 모습은 영락없는 초등학생 땅콩 유혜영이다. 아직 나는 ‘엄마’라는 단어에 ‘이해’라는 단어를 쓸 수 없다.

지하철 의자에 앉아 눈물, 콧물을 흘리며 훌쩍이고 있기 민망해 읽고 있던 책을 슬그머니 덮을 수 밖에 없었다. 몇 정거장 지나고 마음이 진정되면 다시 책을 피게 되련만, 또 다른 문장이 날 찌르고 다시 콧잔등이 찡해질 것을 나는 이미 알고 있다.